기대원
정법사 주지
믿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신념에 사는 사람이다. 믿음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선과 악 정의와 불의에 대하여 분명한 태도를 가지고 산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믿음을 가진 사람은 가치 판단이 분명해야 하고 행동거지도 분명해야 한다. 믿음은 애매모호한 태도는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믿음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그르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분명하게 거부 의사를 보일 수 있어야 하며 또한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에 대해서는 그것을 지지한다는 태도도 분명해야 한다.
그른 것을 보고 거부할 의사가 없거나 옳은 것을 보고서도 그것이 옳다고 하지 못한다면 그는 믿음이 확고하지 못한 사람이다.
그래서 믿음의 생활을 하는 사람은 어떠한 구체적인 사건을 놓고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다는 식의 양시론(兩是論)이나, 이것도 틀렸고 저것도 틀렸다는 식의 양비론(兩非論) 적인 태도를 가져서는 안 된다. 이와 같은 애매모호한 태도는 시민의 윤리의식과 도덕적 감정을 흐리게 하기 때문에 올바른 자세라고 할 수 없다.
올바름(正)이 법이요, 도덕적으로 청정함이라 했다.
부처님이 자비를 말씀하셨다고 해서 악을 보고서도 침묵하라는 의미는 결코 아니며 원융(圓融)을 말했다고 해서 선과 악, 정의와 불의를 동일한 차원으로 보라는 것도 아니다.
또한 선에도 가담하지 않고 악에도 가담하지 않는 것을 중도라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그러한 태도는 도덕적 타락이지 결코 관용의 미덕이 아닌 것이다.
‘악’을 거부하는 사람을 보고 자비롭지 못한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또 정의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을 보고 어리석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악을 배척하고 정의를 위해 자신을 바치는 사람을 보고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한다면 그는 불의에 가담하거나 권력에 아부하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바른 사람의 미덕은 악을 거부하고 불의에 항거하는 신념과 용기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용기가 없는 사람은 자비도 실천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학문적으로 많이 배운 사람도 타락함을 보게 되고 반대로 배우지는 못했지만 떳떳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많이 배웠으나 용기와 신념이 부족한 사람이 오히려 배우지 못한 사람보다 타락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다. 많이 배운 자가 한번 타락의 길로 빠져들면 더 극악해지는 경우도 있다.
자기의 앎을 교묘하게 이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배운 사람의 윤리적 타락을 더욱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믿음을 가진 사람이 악에 대하여 침묵하는 것은 미덕일 수 없고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고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큰 허물임에 틀림없다. 불교의 자비는 얼버무리는 애매모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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